[뉴스엠] [서종숙 칼럼]달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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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지
달 달 무슨 달 쟁반같이 둥근 달 어디어디 떴나 남산 위에 떴지.
달은 밤하늘에 떠서 어둠을 밝히는 빛이다.
달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필자가 2013년 산전문가, 교육전문가, 청소년전문가와 함께 <해마지 달마지>프로그램을 기획했었다. 기획은 거대하고 실행은 미비하였지만 그때 전문가들과 함께 해와 달의 철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교육전문가인 권오구 선생님은“해는 영광과 빛의 상징이며, 행복과 삶을 나타냅니다. 떠오르는 태양은 희망의 상징입니다. 해는 인간에게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는 것을 상징하며, 이상의 추구를 가능하게 하는 매개적 존재로 표현될 수 있습니다. 또한 '해'는 어두운 시대를 밝히는 새로운 역사의 빛을 의미합니다. 천진하고 참신한 해(희망과 광명의 상징)가 솟아오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는 해마지는 자연에 대한 감각적인 기쁨을 정신적인 경험으로 전환시킴으로써, 자연과 인간을 대비하여 존재의 의미를 추구하는 행동입니다. 날로 새로워지는 해를 맞이하는 행동은 낡음을 버리고 새로운 나를 찾고자 하는 열망의 표현입니다...... 달마지와 더불어 행해지는 침묵은 몸과 마음의 정화를 위한 침묵입니다. 감각을 차단한 달마지 침묵은 정성을 다해 귀 기울일 때만 들리는 우주의 언어, 내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입니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되는 과정이며, 온전한 자기 자신을 찾고자 하는 강렬한 침묵으로서의 달마지입니다...“라고 해와 달에 대한 차이점을 피력했었다.
우리는 새해 첫날 떠오르는 해를 보며 한 해 동안 소원을 바란다. 즉 낡음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찾고자하는 열망으로 해마지를 한다.
달마지는 달이 가득한 만월인 정월대보름에 행해진다.
신앙적인 측면에서 달은 부활사상과 잇닿아 있는데, 봄은 겨울을 잇고, 꽃은 서릿발이 녹은 다음 피어나며, 이운 달은 새 달로 돋아나기 때문이다.
달은 밀물과 썰물을 만들어내 육지가 쏟아내는 것을 정화하고, 바다의 에너지를 전해주는 놀라운 힘을 갖고 있다. 하루에 두 번씩, 바닷물을 밀고 당기며 낮과 밤의 풍요로운 생명활동을 지휘하고, 그 지휘에 맞추어 사람들의 일상도, 밥상도, 인생도 달라진다고 하였다. 이처럼 아주 오랜 옛날부터 달은 인간 삶의 기준이었었다.
이런 달을 우리는 보름에 침묵으로서 달을 맞이한다. 침묵은 말이 없다기 보다는 하고 싶은 많은 말을 침묵으로 표현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내가 믿는 신앙에서 “내가 다 안다”라며 나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절대적인 존재가 있는 것처럼, 그 대상이 누군가에게는 달이었다.
그래서 그 옛날 어머니의 어머니가 장독대에 정화수 떠놓고 가족의 안위에 대한 간절함으로 기도드린 때가 있었다.
이 간절함으로 달을 그린 변동렬 작가가 있다. 작가라는 직업으로 불리우기 보다 기획자가 맞을 것이다. 그는 현실 속에서 이 고매한 예술가 정신을 찾고자 한 것이 달이었고 그래서 달은 또 다른 꿈이란다.
변동렬 작가는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 연시조를 읽고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달은 인간의 원형심리에 뿌리를 둔 문학적 소재로 자주 등장하지만 자신의 내면의 깊은 무의식을 건드리기 때문에 달은 자신인 동시에 신적인 의미까지 결부되어 있다.
작가의 달 그림을 보며 달마지를 해본다.
아무런 말이 필요없이 침묵으로 바라보면 더 좋다.
침묵으로 행해지는 달마지를 통해 몸과 마음의 정화가 이루어지리라.
온전한 자신을 찾고자 하는 작가의 강렬한 내면의 울림이 달로 표현되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어머니의 모습 속에 담겨진 우리네 어머니들의 삶의 원형이 지금도 기억의 한자락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달과 그 이면에 있는 그림자를 통해 현재를 치유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작가의 달이 현재 우리네 서민들의 삶의 고단함을 대신해주는 메시아의 모습일 것이다. 어쩌면 달 속에서 자신의 메시아 즉 예술적인 혼을 되찾지 않았을까 기대해본다.
작가의 달 그림 중에서 악의 상징인 킬링조크가 눈에 띈다. 현대사회는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를 가지고 있다. 아니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다. 나의 관점에서 옳으면 선이고 다르면 악이다.
무엇이 선(善)이고 악(惡)일까?
작가는 이 둘 그림간의 인간의 내면을 달을 통해 이야기한다.
달빛 속에 숨겨진 킬링조크의 모습에서 나를 보라고......
킬링조크는“누구라도 나와 같은 상황을 겪는다면 미칠 수 밖에 없다.”라며 자신의 악의 행동을 정당화한다.
이와 상반되게 로고테라피 창시자인 빅터 프랑클은 “인간은 그의 내면에 두 가지 가능성(돼지, 성자)을 가지고 있다. 어느 쪽이 겉으로 나타나느냐는 것은 상황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결정에 따라 좌우된다.”라고 하였다.
킬링조크가 빅터 프랑클의 로고테라피 이론을 알았더라면 어떠했을까?
알았다면......
“내가 너일 수도 있고, 너가 나일 수도 있다.”라는 배트맨의 말에 공감을 했을 것이다.
현재 우리에게는 이 시대의 기준대로 악을 물리친, 어둠을 물리친 촛불의 혁명이 있다. 두 번째 그림은 이를 말해준다. 그의 그림 속 달의 그림자에 어두움에 반기를 든 촛불의 혁명을 볼 수 있다.
촛불의 혁명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그는 오랫동안의 침묵 속에서 참다운 모습으로 어둠을 밝혀주는 연습을 했을 것이다. 촛불의 혁명으로 민초의 소원이 달의 소원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또 다른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
그리고 변동렬작가의 두 그림처럼 외부이든 내부이든 선과 악의 경계에 살고 있다. 이를 통합하는 해결방법은 각자의 마음에 달렸다.
무엇이 선(善)이고 무엇이 악(惡)인가?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상황인가? 결정인가?
작가와의 달에 대한 메시지“가슴에 달 하나 갖고 사는가?”를 통해 이 시대 마음의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달을 선물하고 싶다.
달은 현대판 디아스포라의 마음의 고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