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 마그리트의 거울
마그리트의 그림에는 이면이 있다. 어두운 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 그것은 나를 투영시켜야만 볼 수 있는 거울이다.
우리가 가진 이면을 카프카와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투영해 보고자 한다.
카프카는 동물을 인간화, 인간을 동물화하면서 우리 속에 있는 어두운 면을 보라고 그의 거울로 비쳐준다. 사람과 동물의 관계는 무관한 것처럼 보이나 함께 연결되어 서로를 자극한다. 어쩌면 서로 다른 관계에서 오는 두 사물과의 관계는 바로보지 않으려는 우리의 우울인지도 모른다.
카프카의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1917)에서 왜 원숭이를 주인공으로 했을까 부터 봐야 한다. 이집트 신화에서 원숭이는 언어와 상형문자를 만든 지혜의 신이자 마술사였다.
중세 유럽에서는 부정적 의미에서 시기심이나 어리석음의 상징으로 해석되었다. 그러면 카프카에게 원숭이는? 원숭이의 눈으로 본, 자신이 모방한 인간세계와 인간성의 문제가 주제로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최윤영(2012)은 말한다. 그리고 인간사회에도 원숭이 사회에도 완벽하게 소속되지 않는 제3자로서, 혹은 혼종적 존재로서 특히 자신이 동화되고자 하는 인간사회를 비판적으로 보고 있다. 이는 유대인으로서 유럽사회에 완전히 동화되지 못함을 보여주며 특히 빨간 피터를 통해 폭력적으로 거세된 몸, 즉 유대인의 몸을 보여준다. 이는 자아상과 타자상의 극단적 대립에 대한 갈등이 내재되어 있다고 하겠다.
또한 피터는 자신의 우리에서 나오기 위한 탈출구가 필요했고 이를 위해 인간을 모방하게 된다.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얼마나 모방하는가? 얼마나 살려고 하는가? 그 이면에는 빨간 피터처럼 살고자 ‘탈출구’가 필요한 것이다.
카프카는 그 시대 자신의 삶에서 아버지의 권위와 함께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글쓰기에 대한 강한 열망이 ‘인간의 동물화, 동물의 인간화’로 탈출구를 찾은 것이었다.
그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리 잠자는 물질만능시대에 도구화된 인간상을 반영하며 인간존재에 대한 불안 등을 나타낸다. ‘잠자’는 체코어로 ‘난 고독하다’라는 뜻이다. <변신>에서 인간도 벌레도 아닌 그레고리가 처한 상황과 등치되며 이는 곧 카프카 자신을 표현하는 상징적인 의미라고 하겠다. 또한 고독한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는 유대인으로서 자신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모방을 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의 작품에서 그레고리 잠자와 빨간 피터는 1917년이나 현재 2018년에나 존재하는 우리의 자아상이자 타자상이다.
초현실주의 작가로서 상징적인 작업을 하면서도 마그리트는 “나의 회화에는 상징이 존재하지 않는다. 상징은 시의 신비한 현실에 집착하기 위한 것이며 전통에 매우 충실한 생각에 속한다.”라고 하였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그림에는 상징이 존재한다.
특히 1948년 마그리트의 바슈 시기의 작품은 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이 벨기에를 점령했던 시기의 불안감과 억압적인 상황에 대한 역설적인 저항으로 해석되며 야수주의의 화려한 색채와 거친 표현성을 도입해 야수주의를 풍자하는 역설적인 작업을 선보인다. 이 또한 상징이다.
그는 사회적인 억압과 반감에 대한 인간의 심리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며 인간의 이면적인 욕구를 표현하고 있다. 즉 인간은 있는 그대로가 아닌 역설적인 표현으로도 현실을 반영하며 내면을 드러낸다. 그의 “매력적인 왕자”작품에서 작가가 내면의 감정에 얼마나 충실했는가를 보여주며 그가 억압해 왔던 욕구를 야수주의의 강렬한 색채로 드러낸다. 여기서 수탉은 성경에서는 ‘풍요’를 상징하며 싸우러 나서는 ‘자존심’, 그리고 ‘죽음에 대한 부활’을 의미하기도 한다.
역설적이게도 이 얼마나 강렬한 상징을 가지고 있는가?
야수주의 대표적인 작가인 앙리마티스는 ‘색은 단순할수록 내면의 감정에 더 강렬하게 작용한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마그리트는 색채를 통해 억압된 삶의 욕구를 표현하지만 아내인 조제크가 이전의 화풍을 더 좋아하기 때문에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복귀하게 된다. 그래서 바슈 시기의 몇 작품을 통해 우리는 마그리트의 억압된 감정을 보게 된다.
카프카와 마그리트의 작품에서 우리는 우리 시대의 고독과 우울을 본다.
있는 그대로인가? 역설적인 표현인가? 차이만 있을 뿐이다.
카프카와 마그리트의 거울 속에 비춰진 우리 시대의 억압된 모습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