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인 작가님은 30대에 유화를 시작해 약 40년 동안 작품 활동을 이어오셨다. 교사로 생활하면서도 그림을 놓지 않았고, 오랫동안 포항의 산과 지역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왔다.
예전에는 자연 풍경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그렸다면, 최근에는 형태를 단순화한 반추상적인 작품을 그리고 계신다.
특히 작가님의 그림에는 산이 많이 등장한다.
이유는 의외로 간단했다.
산을 좋아하시니까.
포항의 풍경과 산, 하정리의 모습까지.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바라본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작가님은 무작정 캔버스 앞에 앉아 그림을 시작하지 않는다.
답사를 가고 대상을 정하고, 스케치하고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작업실로 돌아와 본격적인 작업을 이어간다.
그렇다고 현장에서 본 풍경이 그대로 그림이 되는 것은 아니다. 현장에서 보고 느낀 풍경에 작가님의 시선과 해석이 더해지면서 실제 풍경과는 또 다른 하나의 작품이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우리가 보는 한 장의 풍경 뒤에는 작가님이 그 장소를 바라본 시간과 시선이 함께 들어 있는 셈이다.
작가님의 공방을 둘러보다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었다.
한쪽에 걸려 있던 낡은 팔레트였다.
여러 색의 물감이 겹겹이 굳어 있는 모습이 눈에 띄어 여쭤봤다.
“작가님, 저건 지금도 사용하시는 거예요?”
그러자 작가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저건 이제 다 써서 걸어놓은 거야. 멋지지? 물감들이 그대로 쭉 있는 모습이?”
그 말을 듣고 다시 보니 정말 멋있었다. 수명을 다한 도구인데도 여러 겹으로 쌓인 물감을 보고 있으니 팔레트 자체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졌다.
‘이 팔레트로 얼마나 많은 그림을 그리셨을까?’
한참 보고 있으니 나까지 괜히 물감을 꺼내 그림을 그리고 싶어졌다.
보통 다 쓴 물건이라면 버렸을 텐데, 작가님은 그것을 공방 한쪽에 걸어두고 먼저 “멋지지?”라고 물으셨다. 작가님은 풍경을 바라보듯, 오랜 시간 물감이 쌓인 낡은 팔레트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분이셨다.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이 하나 더 있었다.
오랫동안 교사로 생활하고 퇴직한 뒤라면 이제는 좀 쉬고 싶을 법도 한데, 어떻게 40년 가까이 작품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작가님은 창작을 하다 보면 정신적으로 힘든 순간이 분명 있다고 하셨다. 그림이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 때도 있고, 하나의 작품을 두고 끊임없이 고민하게 될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덧붙이셨다.
“그걸 고통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지.”
그 말을 듣고 나니 오랫동안 한 가지 일을 계속한다는 것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한다는 것이 마냥 즐겁고 편안해서 가능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고민과 실패가 반복되어도 그것까지 자신이 하는 일의 한 과정으로 받아들이시는 것 같았다. 작가님이 오랜 시간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도 그 안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인터뷰가 끝난 후 작가님의 공방을 다시 둘러보니 작품들이 처음과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처음에는 그림 속 풍경을 먼저 보았다면, 이제는 작가님이 그 풍경을 어떤 눈으로 바라봤을지가 궁금해졌다.
앞으로 작가님의 그림을 다시 보게 된다면, 그림 속 산만 바라보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