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향순 작가는 한국화를 전공했다. 화려한 색을 여러 겹 쌓아 올리는 그림은 사실 원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우연히 들어온 민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렇게 시작한 색체화는 지금은 그녀의 손끝에서 가장 편안한 자리가 되었다. "취향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즐기면서 한다"는 작가님의 말에는 예상치 못한 자리에서 스스로 재미를 찾아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가 묻어 있다.
작가님에게는 그림 자체만큼이나, 그림으로 가는 길도 소중하다. 지금도 매주 한 번, 수업을 위해 죽장까지 왕복 두 시간 길을 나선다. 버스 안에서 멍하니 창밖 풍경을 바라보는 그 시간이 오히려 반갑다고 말한다.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일주일 치 에너지가 다시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목적지만큼이나, 그 길 위에서 얻는 멍한 여백의 시간이 에너지를 꽉 채운다고 하셨다.
작업을 대하는 태도에도 서두름이 없으시다. 젊은 시절만큼 많은 양을 그려내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곱씹어 익힌 생각이 있으니, 한두 작품만 하더라도 그 안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일곱 살 무렵부터 붓을 쥐었고 몸이 약해 밖에서 뛰놀기보다 책을 보고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냈다. 자연스레 곁에 있던 일이었다. 진학을 앞두고 뜻하지 않게 마주한 석고 데생 한 점이 "다시 그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일으켰고, 그렇게 한 달 다닌 미술학원에서 선생님의 권유로 얼떨결에 시험을 쳤다가, 우연히 미대에 들어서게 되었다. 이후 교직과 육아, 21년간의 미술학원 운영을 거치며 오랫동안 그림과 함께 살아왔다. 그리고 2016년 12월,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의 작가 선정을 계기로 비로소 온전히 자신의 작업에 시간을 쏟을 수 있는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
그 오랜 시간을 지나, 우연히 시작했던 민화는 어느새 작가님의 가장 자연스러운 작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