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헌 작가님이 짚풀 공예를 시작한 계기는 2002년 월드컵이었다. 다 함께 환호하는 분위기 속에서, 정작 자신은 한국적인 걸 딱히 접해본 적이 없다는 걸 문득 느꼈고, 그 뒤로 짚풀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마산으로, 마산에서 다시 대구로. 짚풀공예를 배우러 다녔다. "저는 미술적 재능이 없는 것 같아요." 손수 엮은 바구니를 보며 작가님은 늘 그렇게 생각하셨다. 그런데 그 볼품없는 바구니에 귤을 담아보니, 뜻밖에도 예뻤다. 그 순간 깨달았다. 아름다움이란 스스로 빛나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것을 잘 어울리게 만들어주는 데서도 온다는 것을.
짚풀은 흔한 재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은 구하기가 더 어렵다. 아무도 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 작업을 계속해왔고,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바구니가 없으면 엮어야 했고, 신발이 없으면 삼아야 했던 시절, 짚풀 공예는 예술이 아니라 노동이었다.
꿈틀로 2기로 합류한 그는 보경사 아래 빈 여관에서 본격적으로 새끼를 꼬기 시작했다. 이후 영덕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며 꿈틀로를 다시 만났다.
수업에서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짚을 다뤘다. 어떤 이는 손 대신 발로 짚단을 고정해가며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냈다. 그 모습을 보며 그는 '할 수 있을까'라는 처음의 걱정이 얼마나 섣부른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수업이 끝나면 늘 스스로를 탓하곤 했다. 무엇을 더 해줄 수 있었을까, 하고. 그런데 생각을 조금 바꾸자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업을 하면서 각자에게는 각자의 방식과 속도, 그리고 몫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그저 기술을 배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가르쳐주신 분들이 값을 받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며,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이 길어졌다. '언제까지 배우기만 할 순 없다. 모르면 스스로 길을 찾자.'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그렇게 얻은 이해는 훨씬 깊고 오래갔다.
2020년, 꿈틀로 다방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작품에는 '이야기'가 없었다. 그날 이후 그의 목표는 짚풀 공예에 이야기를 담고 그 영역을 넓히는 것으로 좁혀졌다.
2030년, 광주를 주제로 한 전시가 그의 다음 목표다. 아직 이야기는 찾는 중이지만, 그 이야기를 담아낼 손끝의 기술만큼은 지금도 갈고닦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