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에서 나고 자란 최수정 작가님은 어릴 때부터 글보다 그림을 먼저 그리셨다. 우연히 알게 된 미술 선생님 덕분에 학원비 걱정 없이 그림을 배우기 시작하셨고, 초등학교 시절 장래희망란은 늘 '화가' 한 단어로 채워져 있었다고 하셨다. 돈이 많이 드는 길이라며 집안에서는 반대했지만 뜻을 꺾지 않으셨고, 결국 서양화과에 진학하며 어릴 적 꿈을 이루셨다. 그 시절 학원에는 수채화, 디자인, 조소, 서양화 네 가지뿐이었는데, 그중 서양화를 하는 사람이 그림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하셨다. 무엇이든 제일 잘하고 싶으셨던 작가님에게는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졸업 후에는 미대 출신이라면 곧바로 가입할 수 있었던 향토청년회에 들어가며 작가로서의 첫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비로소 내 그림을 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셨다. 그 후로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붙잡아오신 주제는 '자연과 나'다. 포항에 자리를 잡으신 뒤로 그리시는 대상도 조금씩 넓어졌다. 산에서 시작해 숲과 산으로, 이제는 물까지 화폭 안으로 끌어들이고 계신다.
첫 개인전은 2012년, 서울 인사동에서 열었다. 서울에서 열어보라며 도와준 선배 덕분이었다. 포항에서 전시를 열면 한 달 내내 올 사람들이 하루에 몰려와 물 한 모금 마실 틈도 없었다고 하셨다. 인사동에서는 관람객들과 나눈 질문과 피드백을 통해 자신의 그림이 무엇을 향하는지 비로소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한동안 그림이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기도 있었다. "그런데 그림을 놓으면 내가 없어지는 느낌이었다"고 하셨다. 그 느낌 하나로 아이들을 어느 정도 키워낸 뒤 앞서 말한 인사동 개인전을 여셨고, 이후 경북작가회 등 여러 단체에 몸담으며 어쩔 수 없이라도 붓을 놓지 않으실 수 있었다. 그러다 40대 후반에는 왜 그림을 그리는지 스스로 묻게 되셨다고 하셨다.
답을 찾기 전, 이미 한 번은 붓을 완전히 내려놓으신 적이 있었다. 30대의 육아와 삶의 무게에 짓눌려 1년 가까이 작업을 쉬셨던 시기다. 그러던 어느 날 낙서하듯 무심코 그리신 것이 “칼을 든 여자”였다. 그 그림을 마주한 순간 식어있던 열정이 다시 끓어올랐고, 동시에 한 장의 그림 안에 자신의 인생이 고스란히 함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으셨다. 그림 속 여자의 손에 칼을 쥐어주신 것은, 어쩌면 스스로에게 다시 힘을 실어주고 싶으셨던 마음이었는지도 모른다. 30년 가까이 자연과 자신을 번갈아 바라봐 오신 작가님의 붓끝은, 그렇게 손에 쥐인 칼 한 자루의 힘을 빌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